맥락에서 나온다 → 완벽한 추론

우리의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
너와 나, 즉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반드시 ‘뇌의 작동원리’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뇌의 근본적 작동원리는 ‘맥락적 추론‘이다. 뇌는 맥락의 학습과 활용 없이는 거의 아무것도 결정할수 없다. 뇌는 맥락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정보를 처리한다.
그렇다면 ‘맥락’부터 정의해야 한다.
- [공간적 맥락, spatial context] – 사물따위가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나 연관
- [시간적 맥락, temporal context] – 어떤 일의 전후에 벌어진 일들이 만들어 내는 흐름 혹은 정립된 관계
- [맥락적 정보, Contextual information] – 어떤 정보가 수집될때 그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서로 맺고 있는 특정한 관계
뇌에서는 시간적 맥락과 공간적 맥락이 동시에 병렬처리 된다. 맥락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재료가 섞여서 만들어 진다. 이를 ‘시공간적 맥락’ (spatio-temporal context) 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 뇌는 어떻게든 주어진 여건에서 맥락 정보를 최대한 찾아내서 활용한다. 맥락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형성되고 이 경험은 나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쓰인다.
누구나 자신이 익숙한 공간에선 늘 쓰는 물건을 아주 쉽게 찾는다. 무언가에 익숙하다는 것은 그에 관한 경험이 많다는 것이고, 경험이 많다는 것은 ‘학습’이 잘되어 있다는 의미다. 맥락이라는것은 무언가를 대충 보고도 빨리 알아보고 행동할수 있게 만드는데 필수적인 정보다. 맥락정보는 경험을 통해서, 학습을 통해서 형성된다. 우리 뇌는 물체의 구석구석을 다 분석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뇌는 사물을 빠르게 알아보고 반응하기 위해 미리 예측하며, 이 예측에 필수적인 정보가 바로 맥락정보다.
맥락 정보 없이는 뇌가 외부환경에 존재하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기도, 빠르게 대응하기도 어렵다. 인간의 뇌는 특히 시간적 맥락의 학습에 탁월하다. 인간의 뇌가 다루는 거대한 시간적 맥락 정보는 다른 동물에 비해 훨씬 더 오래된 기억을 가져와 현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뇌는 미래의 일들을 예측하고 대비할수 있게 함으로써 생존경쟁이 벌어질때 다른 동물에 비해 미리 대비하고 준비할수 있다.
그러나 맥락적 정보처리는 잘못된 사고와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약점으로 작용할때도 많다. 즉, 뇌의 맥락적 정보처리는 인간의 최대 강점이자 약점이다. 우리들은 종종 전체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누군가의 말을 듣고 흥분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악마의 편집’이 그런 경우다. 최근 언론들은 특정 표현 앞뒤의 중요한 내용들 즉, 맥락을 전달하지 않고 자극적인 장면만 보도하여 의도적으로 오해를 유도한다. 이처럼 앞뒤에 벌어진 일과의 연관성을 다 끊어 버리고 내보내는 경우 실제 벌어진 일과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수 있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맥락적 추론

우리 뇌가 물체를 시각적으로 알아볼수 있는것은 물체에 의해 반사되는 파장들을 감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 뇌는 흔히 ‘가시광선’으로 부르는 400~700나노미터 파장대의 빛만 볼수 있고, 이 파장대의 범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스펙트럼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 눈 안에는 이러한 빛의 특정 파장이 ‘망막retina’을 타고 들어와 ‘뇌의 시상thalamus’ 이라는 영역의 특정 하위 영역인 ‘외측슬상핵lateral geniculate nucleus’ 으로 전달된다.


위 사진을 보면 우리 눈 뒤쪽에는 맹점blind spot이 있다. 맹점에는 빛 수용체에 해당하는 세포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온전히 무엇인가를 본다는것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곳을 까맣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인식해야 한다는것이지만 실제 우리는 바깥세상이 온전히 감지되는것처럼 본다. 이것은 우리 뇌가 이 맹점에 해당하는 부분을 그 주변 세포의 정보를 가지고 메꿔 주기 때문이다. 즉, 맥락적으로 추론해서 커버해주는 것이다.
망막에서 시상에 도달한 정보는 1차 시각피질로 다시 전달되는데, 이 정보 전달 과정을 ‘감각’이라고 부른다. 1차 시각피질에 있는 뇌세포의 주된 임무는 망막을 통해 전달된 세포들의 활동패턴을 받아서 최초에 그 패턴을 만들어 냈던 외부 세계의 물체의 외관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뇌가 시각정보를 감각하는 예에서 보듯, 감각은 물리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뇌가 이해할수 있는 세포의 전기적 신호로 바꾸는 아주 기초적이고 중요한 단계다. 시각 외 청각, 후각, 촉각도 모두 빛, 소리, 냄새 등의 물리적 에너지를 뇌가 이해하는 전기적 신호로 변환해야만 우리가 감각할수 있다. 이처럼 신호의 성질 자체를 바꾸는 과정을 ‘변환transduction’ 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감각된 정보를 우리는 어떻게 ‘지각’하는걸까? 그리고 우리는 감각된 정보를 제대로 ‘지각’하긴 하는걸까? 사실 우리 뇌는 외부 세계의 ‘애매한’ 정보처리를 하는데 특화되어 있다. 애매한 자극을 우리 뇌가 아무 어려움 없이 다룰수 있는 이유는 맥락적 정보처리가 뇌의 핵심 원리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바위에 가려져 코와 귀만 살짝 보여도 우리는 코끼리를 알아볼수 있다. 우리 뇌의 고등인지 영역이 ‘아프리카 초원’이라는 공간적인 맥락 정보를 하향식으로 시지각 영역에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이미 평생동안 이루어진 많은 학습을 통해 바깥세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과 상황에 대한 ‘인지적 모델cognitive model’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척 보면 안다’라고 하는것은 우리 뇌가 이미 맥락적 정보를 가지고 사전에 무엇을 봐야 하는지 후보군을 정해 놓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옛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라는 말이 있다. 이 역시 맥락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는 인터넷에서 한번쯤 보았을 만한 ‘시각적 착시visual illusion’ 자극을 이용한 사진이다. 착시란 실제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것을 존재하는것처럼 지각하는것을 의미한다. 착시 현상의 예를 만들때 가장 중요한것은 애매함을 해소할 충분한 맥락 정보를 주지 않는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애매함을 해소할 강력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몇가지 후보 상태를 오가며 뇌가 혼란스러워 하게 되는것이다.
자극의 애매함을 정확히 해소해 줄 만한 강력하고 충분한 맥락 정보를 주지 않고 뇌에게 무언가 해석할 것을 요구하면 뇌는 사람들 사이에 개인차를 만들어 낸다. 특정한 맥락을 조성하여 애매한 정보는 모두 그 맥락에 맞추도록 하는 ‘지각적 편향’은 시각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감각과 지각에서 나타난다. 귀로 소리를 듣고 해석하는 청지각도 맥락정보에 의한 편향을 가져온다.
범주category 란 무엇일까? 범주화categorization 라는 것은 연속적이거나 다양한 개별의 것들을 비슷한 속성에 따라 몇개의 잘 구분되는 집단으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구분 지을수 있는 경계를 만드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연속되어 있는 지면위에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를 만드는것, 대화할때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가며 쓰는것 모두 범주화의 일종이다. 미국 텍사스에서는 백인을 많이 마주칠것 같지만 휴스턴이라는 도시는 다르다. 유색인종과 이민자가 아주 많다. 그래서 다양한 인종이 하는 영어를 들을수 있는데 인도인이 하는 영어, 흑인이 하는 영어, 일본인이 하는 영어, 아랍인이 하는 영어 등은 제각각 아주 독특한 억양과 음 특색을 가지고 있어 표준 영어에만 익숙한 사람이 알아듣기 정말 어렵지만 신기하게도 우리 뇌의 학습능력은 실로 놀라워서 1년 정도 지나면 또 그들 나름의 영어에 귀가 적응을 하고 어느정도 알아듣게 된다.
와인맛에 대한 평가가 와인의 가격에 따라 매우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어쩌다 와인을 마시는 일반인이라면 사실 맛으로만 좋은 와인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상표를 공개하지 않고 일반인들에게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는 경우 비싼 와인과 저렴한 와인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저렴한 와인도 비싼 와인이라고 말해주면 와인의 맛을 훨씬 더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 뇌가 자극의 애매함을 맥락정보를 통해 해석하려고 하는 선천적 경향성이 지각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잘 말해주는 내용이다.
완벽한 추론을 결정하는 맥락 설계의 비밀
뇌인지 과학자들에게 “뇌에서 맥락정보를 만들어 내면서, 다른 여러 영역들의 정보처리에 맥락적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영역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 누구나 주저하지 않고 ‘해마’를 꼽을 것이다. 이처럼 감각, 지각보다 상위의 정보 처리 단계이면서, 뇌의 맥락적 정보처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건 ‘해마’다.

해마는 바깥세상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수집할까? 가장 중요한 뇌 영역은 내후각피질entorhinal cortex 이다. 내후각피질은 눈, 코, 입, 귀와 같은 감각기관들에게서 전달된 정보를 모두 연합시켜 하나의 ‘비빔밥’을 만드는 즉, 정보처리의 최상위 단계에 있는 연합피질associative cortex 인것이다. (내후각피질 = 최상위 단계에 있는 연합피질)
레고로 예를 들어보자. 우리의 감각은 하나의 색깔, 모양을 가진 레고 블록이다. 그리고 이 레고 블록을 같은 색깔의 레고 블록을 여러개 합쳐 무언가 형태를 만드는것이고, 내후각피질과 같은 연합피질은 무언가의 형태를 더 큰 덩어리의 레고 블록들로 만들며, 해마는 이 블록들을 완전한 3차원 구조로 짜맞춰 완성시키는것이다.
- 감각 → 레고 블록 개별단위
- 지각 → 레고 블록을 색깔 단위로 짜맞춰 어떤 형태를 갖춤
- 내후각피질(연합피질) → 다른 색깔의 레고 블록들을 더해서 큰 덩어리로 만듬
- 해마 → 각각의 큰 덩어리 블록들을 완전한 3차원 구조로 짜맞춰 완성시킴
해마에는 치아이랑dentate gyrus, CA1, CA3 이라는 3가지 하위영역들이 존재, 내후각피질로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정보를 받는다.
- 치아이랑 = 패턴분리pattern separation =
- CA3 영역 = 순환신경망recurrent network = 자가연합 신경망autoassociative network = 파편화된 정보들을 순간적으로 엮어서 하나의 구조물로 만들어 낼수 있음 = 맥락의 핵심 = 패턴 완성 = 일반화
영화를 보고 나면 재미있었던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구분하게 된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중요한것은 이야기story,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이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컨텐츠는 대중의 뇌가 집중해서 몰입적 경험immersive experience을 하게 만든다. 해마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여러 사물이나 사람 등이 만들어 내는 맥락적 정보를 하나로 묶어 마치 한땀 한땀 뜨개질을 해서 스웨터를 만들듯 일화기억episodic memory을 만들어 낸다.
해마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기억을 시간순서에 따라 인출retrieval 하는 ‘일화기억’을 해야 한다. 일화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는 뇌 속의 타임머신이다. 진정한 타임머신은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도 제약없이 넘나들수 있어야 한다. 미래에 벌어질 법한 일을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할수 있어야 한다. 일화기억은 무엇을, 언제, 어디서 라는 3가지 요소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다시 말하면 대상what, 시간when, 장소where, 우리가 익숙한 말로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 3가지 요소가 한꺼번에 학습되고 기억되는 것이 일화기억의 핵심이고, 이 정의에 따르면 일화기억은 사람의 뇌만이 가질수 있는 고유한 능력은 아니다.
편견, 고정관념은 뇌의 경험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것이 나타날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끊임없이 새로운것을 학습해야 적응하고 생존할수 있다는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 인지적 게으름이다. 자신이 상사이고 부하직원은 자신의 말을 들을수밖에 없다는 위계적인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본인은 새롭게 학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오만이 꼰대 상사의 인지적 정보처리 밑바닥에 존재한다. 이런 상사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기업은 절대 새롭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수 없고 생태계에서 도태될수 밖에 없다.
세대 갈등 문제를 보자. 모든 갈등은 상대방이 어떤 사건을 겪으며 어떤 맥락을 갖게 되었는지를 ‘학습’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다.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과 태도는 학습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은것이다. 내가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싶지 않고 그들이 못마땅하다면 그것은 어딘가에서 그렇게 내 입장을 정하는 것이 이롭고 편하다는 것을 학습한 결과이다. 젊은 사람 역시 마찬가지 학습을 할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학습의 결과로 나타나는 행동을 했을때 부정적인 결과가 행동 수정을 요구할 만큼 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